평택in 평택人 안종하 씨

뇌경색 이후 죽음만 생각…목공예로 삶의 의지 되찾아

지난 47회 경기도 공예품 경진대회서 입선

2004년 어느 토요일, 초기대응이 잘 되었다면, 안종하(64) 씨의 인생은 지금과 달라질 수 있었다. 그날 아침, 안종하 씨는 몸에 이상징후를 느겼다. 전날 먹은 고등어 때문에 체한 줄로만 알았던 안 씨는 동네 내과를 찾았고, 내과에서는 아무 이상 없다고 영양제 주사만 놔주었다. 힘겹게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아마자 안 씨는 쓰러졌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부인이 이를 발견하고, 급히 병원 응급실에 찾아갔다. 하지만, 병원에서도 별다른 처치 없이 영양제 주사만 놓고, 안 씨를 입원시켰다.

안종하 씨와 이번 경기도 공예품 경진회서 받은 상장

병이 뇌경색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틀이 지난 월요일이었다. 그렇게 안 씨는 몸의 오른쪽이 마비가 되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억울하고 아쉽다. 뇌의 혈관이 막힌 이후 6시간 안에 제대로 응급처치가 이루어졌으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 골든타임을 병원에서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안 씨는 “그 날이 토요일이 아니어서 전문의가 있었거나, 병원을 직접 찾아가지 않고 구급대원을 불렀더라면 응급처치가 됐을 거예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억울한 마음뿐이에요”라고 전했다.

그날부터 안 씨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되었다. 신체 오른쪽 부위의 마비로, 말도, 걷는 것도, 팔을 쓰는 것도 어렵게 되었고, “숟가락을 간신히 들 정도”로만 활동범위가 정해지는 장애인이 되었다. 안 씨는 더 이상 업무를 지속할 수 없어 20여 년 재직한 공무원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안종하 씨는 “공무원 생활 때문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뇌경색이 왔던 거예요. 더 일찍 일을 그만 두었으면 장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 둘 일도 없었을 거예요”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목공예 작업을 하고 있는 안종하 씨

이후 8여 년 동안, 안종하 씨는 매일 ‘죽음’을 생각했다. “하루종일 텔레비전 앞에 멀뚱히 앉아 있는 것이 지겨웠고, 친구들도 없어지면서 환장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죽음만을 생각했고, 어떻게 죽을까를 고민하게 되었어요”라며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실제 안 씨는 자살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베란다에서 목매달고 죽으려고 했는데, 오른손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어 실패했어요. 이후에는 술과 함께 농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는데, 부인이 일찍 발견해서 살아났어요”라며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덤덤히 이야기를 전했다.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 안 씨는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때 떠오른 것이 목공예였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도 조금씩 목공예를 배웠기 때문에 집 안에 관련 재료와 도구가 있었기에 5년 전부터 가볍게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목공예가 안 씨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오른손으로 목공예를 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왼손을 사용하려 했는데, 처음에는 어려웠죠. 하지만 차츰 하다보니까 왼손으로도 익숙해졌고, 하다보니까 삶의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며 “자꾸 몸을 써서 그런지, 목공예를 한 이후로 말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고, 걷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되었어요. 지금은 운동도 하고, 밖으로 나가 모임에도 참석해요. 지난번에 미국에도 80일간 다녀왔어요”라며 죽음의 시간이 삶의 시간으로 바뀐 과정을 들려줬다.

이번에 입선한 작품

제작한 작품들은 집안에 빼곡이 자리하고 있었고, 하나하나 정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스스로는 “별 거 아닌 것”이라며 목공예작품을 소개하지만, 주변에서는 그의 작품을 알아봤고, 대회에 나가볼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올해 처음 경기도 공예품 경진대회에 작품을 출품했어도 안 씨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그의 작품성이 인정돼 입선하게 됐고, 지난 8일 상을 수상하게 됐다. 안종하 씨는 “아내는 내가 목공예를 하는 걸 먼지난다고 싫어해요”라며 웃음 섞인 농담을 전하면서도 “앞으로도 목공예를 계속하면서 활력을 얻으면서 살아갈 거에요”라며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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