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교수가 전하는 조선의 아버지들 ⑤ 비운의 아버지, 영조

정조에게까지 부정적 결핍 남긴 영조와 사도세자의 부정적 부자관계

영조

평택시립도서관이 주관하는 ‘보통사람들의 인문학’에서 5회에 걸쳐 5명의 조선의 아버지들을 집중 조명하는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의 마지막 강의가 ‘비운의 아버지, 영조’라는 주제로 지난 8일 있었다. 백승종 교수는 아버지로서 성공하지 못한 영조를 소개하면서 사도세자의 불행은 영조와 사도세자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이 불행은 정조에게까지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불행의 시작 ... 아버지로서의 욕심

백승종 교수는 영조가 학식이 뛰어나고, 공부욕심이 많으며, 공부를 강조했던 사람이었다고 소개하며, 탕평책으로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고, 균역법으로 백성의 부담을 줄이고, 삼심제로 사법 개혁을 시도했던 왕이라며 “왕으로서 국가를 위한 많은 일을 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아버지로서 영조는 일방적이었다. 백 교수는 “당시 18세기에 영국은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었고, 프랑스는 시민혁명을 준비하고 있었고, 여러 서양세력들은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며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영조는 사도세자가 공부를 자신보다 더 잘하길 원했다. 헤쳐 나갈 파도가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이에 아버지 영조는 아들이 다른 것은 못해도 공부에 뛰어나길 바랐다. 무예를 좋아했던 사도세자에게 칼을 잡지 못하게 하고, 활을 쏘지 못하게 하고, 말을 타지 못하게 했다. 어려서부터 사도세자가 완벽하게 글을 외우지 못하면 면박을 주었다. 신하들보다 학식이 없는 사도세자를 부끄럽게 여기기까지 했다. 사도세자를 시험하고, 그를 더욱 채찍질하기 위해 대리청정도 해보았지만, 둘의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사도세자가 어떤 결정을 하던지 그 결정이 못미더워 아들을 타박하고, 결정을 하지 않고 자신에게 물어보면 ‘그것도 결정하지 못하느냐’며 타박을 했다. 백승종 교수는 이에 “사도세자는 어떻게든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영조와 사도세자, 서로를 죽이기로 결심하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던 사도세자를 당시 비주류파였던 소론과 남인이 옹호하자 영조는 아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백 교수는 “사도세자가 왕이되면 노론 중심의 정치세계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 소론과 남인들이 사도세자의 편을 들게 됐다. 이를 영조가 금세 알아차렸다”며 “영조는 ‘결국 나를 죽일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고, ‘얼간이 같은 아들이 왕이 되면 저들 장단에 놀아날 것이다. 그러면 나라가 망하겠구나’라고 판단했다”고 하며 영조가 번번이 왕직을 내려놓겠다고 한 이유를 설명했다. 왕직을 내려놓겠다고 했을 때 누가 좋아하는 지 살피고, 이들을 찍어내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버지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의 관계는 더 악화되고 있었다. 백 교수는 “사도세자가 점점 아버지를 피하기 시작했다. 불러도 가지 않았고, 문안도 하지 않았고, 궁 밖으로 여행을 다니다가 적발되기도 했고, 공부를 하지 않고도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며 “아버지 입장에서는 문제아로 인식했다”고 했다.

결국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이런 때에 영조의 부인이던 정성왕후 서씨가 죽자 영조는 10대 여성인 정순왕후 김씨에게 새장가를 가게 된다. 백 교수는 “정순왕후에게 아들만 생기면 모든 것이 바뀌는 상황이었다. 사도세자 편에 섰던 신하들도 소극적으로 바뀌었다”며 “사도세자는 불안했다. 사도세자도 아버지 영조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수챗구멍을 통해 영조의 처소로 가려고 했지만 몸집이 커서 수챗구멍을 통과하지 못해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영조는 결국 뒤주에 사도세자를 가둬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에 영조는 자신을 변명했다. “영조는 ‘죽은 정성왕후가 꿈에 나타나 사도세자가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했고, 꿈에서 깨보니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이씨도 사도세자가 역모를 꾸미니 그를 죽여야 한다고 했고, 장인도 사도세자를 죽이라고 뒤주를 가져왔다. 이는 하늘의 뜻이었다‘고 변명했지만, 이는 말도 안되는 것”이라며 “꿈이야 꾸며낼 수 있는 것이고, 생모와 장인에게 윽박질러 주문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 이유는 “사도세자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8일이 걸렸기 때문”이라며 “이는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이기로 결심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신질환의 대물림

백승종 교수는 “잔인하게 아들을 죽인 영조에게서 정신질환이 보인다”며 “형 경조가 왕을 할 때 자객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찾아오기도 하는 등 어려운 삶을 살았다. 경조가 죽었을 때는 자신이 죽인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며 “이 때문에 영조에게 정신질환이 생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왕으로서 불안했고, 신하를 불신한 영조가, 그 불신이 커질수록 아들을 닦달했고, 이에 아들의 정신도 부서져 정신질환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도 영조와 사도세자가 정신질환을 갖고 있었다고 서술한다.

정신병을 갖고 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정조는 멀쩡했을까? 백 교수는 “확신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어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신화를 만들어 영웅으로 만들려고 했을 뿐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며 “이러한 영웅화를 통해 정조의 결핍, 부성에 대한 결핍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잘못된 부자관계가 3대를 불행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 백 교수의 설명이었다.

 

백승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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