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릴레이 기고 6

최경숙 글사랑 회원

[평택시민신문] 단편 중 내 시선을 끈 소설은 배를 타고 가다 조난을 당해 무인도에 도착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구조를 기다리던 생존자들은 한정된 식량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전쟁 중과 같다고 생각해 노인에게는 더 이상 햄 통조림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하니 노인이 제안한다. 본인이 억만장자이니 나중에 구출되면 통조림 하나에 천 만원씩에 주겠다고.

책에 실린 <무인도의 부자 노인>의 이야기 중 일부다. 그런데 노인의 제안에 나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하는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소설은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결말로 끝이 나버렸다. (궁금하신 분은 책을 읽어보시길) 한방 맞은 것 같았다. 그렇게 <회색인간>은 독특한 소설집으로 나에게 왔다. 평택시립도서관 글사랑 모임에서 함께 토론할 책으로 선정되어서 모임을 앞두고 읽기 시작했는데,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라 중간에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각 단편이 20~30페이지를 넘지 않아 금방 다음 단편으로 넘어갈 수 있었는데, 책에 실린 모든 단편들이 ‘신선하다, 기발하다, 재미있다’ 등등의 감정 들을 불러일으켰다. 책장을 중간 정도 넘겼을 때는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겼다. 이 책을 쓴 작가가 누구지, 누군데 이런 글을 쓰는 거지? 인터넷을 찾아봤고 그의 특이한 이력을 들었을 때는 ‘그러니까 이렇게 다르게 쓸 수 있었겠다’ 싶기도 했고 그럴수록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은 이래야 한다는 주류문학의 틀도 등단이라는 관문도 김동식 작가는 ‘난 그런 거 모르는데’ 하고 가뿐히 넘어버린 것도 같았다

좋은 책의 조건이 다음과 같다면 아마 <회색인간>은 좋은 책이다.

첫째, 이 책은 다양한 질문을 하게 만든다. 쉽지 않은 일이다. 세대별로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으며 은연 중에 자신에게 혹은 우리에게 질문을 했고, 또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초등학생들도 이 책을 읽고 많은 질문을 한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유일무이한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두 번째 이 책은 궁극적으로 ‘인간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담고 있다. 적극적인 시대정신은 좋은 소설의 요소라고 생각한다. 한 인터뷰를 읽어보니 작가가 의도한 바는 아니라고 했단다. 사회를 신랄하게 꼬집겠다고 발벗고 나선 것도 아닌데, 모든 이야기가 현재 우리들의 모습에서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게 하고 그러다 결국 스스로를 부끄럽게 하다니, 놀랍기까지 하다. 셋째, 한마디로 독특하다. 소재도 요괴, 인조인간, 지저(地底)인간 등 기존 소설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것들이고 이야기의 전개나 구성 면에서도 어디서 읽은 것 같고, 본 것 같은 것이 없다. 그런 점에서 작가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

물론 구성이나 묘사 측면에서 완성도가 아주 높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들에게 있어 문화란 하등 쓸모 없는 것이었다.”라는 소설집의 첫 문장처럼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 하는 묵직한 질문을, 결코 ‘척’하지 않고 하는 책이란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무엇보다 독자로서는 작가의 상상력과 스토리의 힘이 계속되는 한 뻔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와 사회를 알아가는 기회를 제공해줄 테니 즐거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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