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존 헌법에서 결정적 약점만 보완하는 ‘원포인트’ 방식으로 헌법 장수
한국도 전면적 개헌 대신 ‘원포인트’ 개헌으로 사회적 혼란 방지해야

김남균 평택대 미국학 교수

[평택시민신문] 올 해는 1948년 7월 17일 제헌헌법이 제정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이 발효된 지도 30년이 된다. 현행 헌법 아래 몇 번의 성공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으나 개헌 논의는 끊이지 않는다. 지난 6월 지방선거 직전까지도 개헌을 놓고 여야의 줄다리기가 있었다. 그러나 여야는 개헌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 헌법은 다양한 역사를 경험했다. 개정 횟수만도 9회에 이른다. 평균 7-8년 마다 헌법이 개정된 셈이다. 우리 헌법이 자주 개정된 가장 큰 이유는 권력자의 정치적 욕심 때문이었다. 헌법이 권력을 통제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 헌법을 도구화했다. 그렇지만 1987년 헌법 개정은 우리 헌법사의 분수령이다. 국민의 요구로 이루어진 개헌이었다. 이후 개헌논의가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현행 헌법은 유례없는 장수를 누리고 있다. 과연 현행 헌법이 앞으로도 계속 장수를 누릴 수 있을까?

성문헌법의 세계 최장수 기록은 미국 헌법이 가지고 있다. 미국 헌법은 1787년에 제정되었으니 올해로 231주년이 된다. 미국 헌법이 장수한 첫 번째 이유는 독특한 개헌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헌법은 제정과정이 끝나기도 전에 개정요구에 부딪혔다. 인권조항이 없다는 것이 비준과정에서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대표가 모인 의회가 법을 제정하기 때문에 인권탄압을 방지하는 인권조항이 필요 없다는 것이 헌법을 기초한 지도자들의 논리였다. 그러나 강력한 비판 앞에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라 불리는 인권조항 10개조를 헌법조문에 추가하기로 합의한 후 겨우 비준이 이루어졌다. 권리장전은 1789년 의회를 통과하였고 1791년까지 비준되었다. 이후 미국은 헌법 개정이 필요한 경우 기존 헌법에 새 조항을 추가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소위 ‘원 포인트’ 방식이다. 현재까지 미국은 27개 조항의 새로운 내용을 기존 헌법에 추가했다.

미국은 ‘원 포인트’ 방식으로 기존 헌법에서 발견되는 결정적인 약점들을 시대에 맞게 보완할 수 있었다. 단적인 사례가 노예제 규정이다. 제헌과정에서 노예제는 심각한 논쟁거리였다. 북부는 노예제에 반대했으나 남부는 강력하게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결국 남과 북은 헌법에 노예제를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노예제는 공화국 건설을 목표로 하는 미국 헌법의 기본원리에 맞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규정이었다. 노예제를 둘러 싼 내적 갈등은 1861년 남북전쟁으로 폭발했다. 전쟁 중이던 1865년 1월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수정 헌법 13조를 통과시켜 노예제를 폐지했다. 기존 헌법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미국 헌법이 장수한 또 다른 중요한 배경에는 위헌법률심사제에 있다. 1803년 마베리 재판(Marbury v. Madison)에서 처음 위헌법률심사제가 도입되었다. 당시 대법원장 존 마셜(John Marshall)이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이라도 헌법에 위배되면 무효라고 판결했다. 지금은 상식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위헌법률심사가 생소한 헌법이론이었다. 이 판례로 미국 법원은 헌법 규정에도 없는 위헌법률심사권을 갖게 되었다. 국민의 대표가 제정한 법률을 9명의 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에서 폐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대법원의 위헌법률심사는 입법부와 행정부를 견제하는 강력한 견제수단이 되었다. 1930년대에는 뉴딜법과 같은 행정부의 개혁입법이 위헌 판결을 받는 일도 발생했다. 위헌 판결로 뉴딜정책의 추진이 저지되자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법원 개혁안까지 추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여론은 대법원의 뉴딜법 위헌 판결에는 비판적이었으나 대통령의 대법원 개혁안은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미국 헌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확실히 인정받고 있었다. 미국 헌법이 장수한 둘째 이유이다.

한편 위헌법률심사제는 기존 헌법을 지키는 수단이 될 뿐 아니라 새로운 해석을 통하여 헌법 규정의 내용을 현실에 맞게 바꿀 수도 있다. 한 예로 1896년 플레시 재판에서 대법원은 흑백분리를 규정한 남부의 법규들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엄격한 흑백차별의 현실을 인정한 인종차별적 해석이었다. 그러나 1954년 브라운 재판에서 대법원은 흑백분리 자체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변화된 사회 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해석이었다. 새로운 헌법 해석을 통하여 헌법 개정과 같은 효과를 만든 것이다. 헌법은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인종차별문제는 해결됨으로써 헌법의 수명이 연장될 수 있었다.

헌법은 국민의 모든 활동을 지배하는 기본 원칙이다. 헌법 원칙이 국민의 의식에 뿌리내리고 생활습관으로 자리 잡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다. 반대로 일정한 시간이 지나 국민의 의식에 내재화된 원칙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거기다 기본원칙이 자주 바뀌면 인식의 혼란과 생활의 불편이 초래된다. 무엇보다 원칙의 뿌리가 흔들리는 사회에서 수준 높은 법치문화가 꽃필 수 있겠는가? 불편한 점도 있지만 이미 30년을 견딘 헌법이다. 급격한 전면적인 개헌은 사회적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대신 ‘원 포인트’ 개헌이 현실적 대안이 아닐까? 여야 모두 국가적 원칙을 바꾸는 일에는 신중할 것을 주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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