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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혁명의 꿈, 한반도 평화체제의 실현

기사승인 2019.03.20  10:3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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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 100주년 기념 평택시민신문-(사)흥사단 공동기획 특집

3.1운동은 근대 민중운동의 출발점
‘한반도 경제공동체 실현’ 길 열리길

[평택시민신문]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만세와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2019년, 올해는 3·1 운동과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평택시민신문>은 3·1절 100주년을 기념하는 릴레이 기획 기고란을 평택안성흥사단과 함께 마련한다. (사)흥사단은 1913년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민족의 자주 독립과 번영을 위해 창립한 단체로 창립 이래 지금까지 민족의 평화통일과 자립 자강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고, 평택안성흥사단은 그 뜻을 이어 활동해오고 있다. 3월 매주 3차례 실리는 글을 통해 3·1절의 참된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고, 진정한 자주 독립을 위한 앞으로의 과제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번 기획 칼럼은 (사)흥사단 단원 개인들의 글로 (사)흥사단의 공식입장과는 다를 수 있음을 밝힌다.

 

 

3.1운동은 3.1혁명

3.1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3.1운동을 3.1혁명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흔히 3.1운동을 3.1독립운동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국권을 잃고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민족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조선의 지도자들과 민중들이 한반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심지어 두만강 넘어 북간도 등에서도 유혈을 마다치 않고 만세를 부르며 독립의 열망을 표출한 것을 주목한 명칭이다. 하지만 3.1운동 속에는 독립만세운동 외에 우리가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역사적 성격과 의의들이 담겨 있다.

우선 1919년 4월 11일 상해로 결집한 독립운동 지도자들 일부가 임시정부 의정원을 구성하고 제1호 안건으로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명기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선포하여, 이 때로부터 한민족은 조선왕조의 복원을 꿈꾸는 복벽운동의 길을 완전 차단하고 민주공화제를 정체로 하는 근대국가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점이다. 프랑스, 영국 등은 시민혁명이라는 내전과 유혈의 강을 건너며 왕정복고의 길을 끊고 근대국가로 나아갔던 것인데, 우리의 경우는 임시정부 의정원이 민주공화제를 선포함으로써, 복벽의 가능성을 없애고 근대국가로의 발걸음을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3.1운동은 1876년 개항 이래 펼쳐진 구국운동들 중 추구하는 이념과 정체가 달라 서로 합류하기 어려웠던 의병운동, 애국계몽운동 등을 역사의 명령으로 한 흐름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그 결과 3.1운동 직후 러시아령의 대한인국민회, 한성임시정부, 상해임시정부 등 3개의 임시정부가 생겨났고, 광한단 대한독립단 신흥무관학교 등 만주지역에 다수의 군사 조직이 결성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3.1운동은 이후 근대국가의 국민이 수행해야 할 다양한 사상운동, 경제운동, 교육문화운동, 계급운동 등의 출발점을 이루어, 이후 다기한 분출을 이루게 되었다.

3.1운동은 이처럼 조선 왕조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민주공화체제로의 지향을 확고히 하고, 3.1 이전의 이질적 역사적 흐름들을 하나의 강물로 모아내고, 다시 이로부터 근대 민족운동 및 근대 민중운동의 출발점을 이룬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3.1운동은 한민족 근대의 신기원이 되었고, 3.1혁명이라고 불러 마땅한 역사적 사변이었다고 할 수 있다.

 

100년 전 3.1혁명의 과정에서 솟아난 자주적 근대국가를 향한 꿈,
한반도 평화체제의 꿈이 실현될 수도 있는 상황

 

 

3.1혁명의 미완과 그 원인

3.1혁명은 일제로부터의 독립과 자주적 근대국가를 추구하는 운동이었고, 그것의 실현을 역사의 명령으로 우리 민족구성원에게 요구하였다. 하지만 3.1혁명의 바람과 요구는 그 100주년이 되는 오늘에도 실현되지 못한 채, 여전히 미완의 혁명으로 남아 있다. 왜 100년 전 3.1혁명에서 발효된 자주 독립국가 수립이라는 민족적 염원은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일제하 시기부터 보자. 이 시기 독립운동의 한 특징은 통일된 독립운동을 추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1921년 5월 12일 상해에서 열린 시국강연회에서 ‘금후의 독립운동은 어떠한 독립운동인가?’를 묻고 1.군사운동, 2.외교운동, 3.재정운동, 4.문화운동, 5.식산운동, 6.통일운동이라고 정리하고, 이 중 통일운동은 이 여섯 가지 운동을 종합한 명사라고 정의하였다. 다시 말해 독립운동은 제 분파, 제 영역을 통일시켜 추진할 때만이 제대로 된 독립운동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고, 도산은 이 요구를 ‘통일독립(統一獨立)’이라는 말로 정식화하였다. 혜안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의 독립운동 세력들은 그로부터 1945년 해방 시점까지 제대로 된 통일독립운동을 구현하지 못했다. 1923년 국민대표회의의 결렬, 1927년 결성된 좌우합작의 신간회운동의 해소, 20년대 말과 30년대 초 민족유일당운동의 좌절, 1932년 10월에 좌우가 결성한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의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와 조선민족전선연맹으로의 양분 등 통일독립운동의 좌절의 역사가 지속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여 동아시아가 온통 불바다로 변한 이후에도 독립운동세력은 통합을 이루지 못하였고 각개약진의 길을 걸어갔다.

1945년 해방이 되었을 때는 어떠했던가? 일제로부터의 독립은 이루어졌지만 38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국토 분단이 강요된 현실에서 통일된 자주적 근대국가 형성을 위해서는 모든 민족민주 세력이 일치단결해야 했다. 하지만 남한의 경우 독립운동의 이단아 이승만이 자신의 정권 획득을 위해 친일분자들을 결집하여 민족민주 인사들을 탄압하고 좌우 대립을 부채질하더니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제안하여 민족을 분열시키고 급기야 1948년에는 남북에 각기 다른 정부가 수립되어 국가 분단을 초래하였다. (이 점에 관한 북한 측의 당시 내밀한 정황은 더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임). 그 결과 1950년에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의 참화와 극렬한 대립 속에서 완전한 민족분단이 이루어졌으니, 결국 3.1혁명에서 솟아난 자주적 근대국가의 꿈은 해방공간에서도 배반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국전쟁 후 60여년의 상황은 어떠했던가? 이 시기 대부분은 냉전의 시기로서 자주적 근대국가 즉 통일국가를 향한 운동에는 불모의 시기였고, 1990년 미소간 몰타 회담을 통해 냉전 종식이 선언된 이후 시점에 이르러서야 약 4반세기 동안 남한 사회 내 흡수통일 세력과 평화통일 세력 사이에서 자주적 근대국가의 비전을 둘러싼 각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하고 북핵위기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1998년과 2003년 차례로 등장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의해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금강산관광 개성공단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후 연속 등장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의해 이 모든 것들이 무화되고, 평화통일보다는 북한의 붕괴와 흡수통일을 기다리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지금은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 북한 정권이 핵경제병진노선의 철회와 경제우선주의를 표방한 것을 계기로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시작되고 남북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협상이 진행됨으로써, 3.1혁명의 오랜 꿈이 되살아나고 있다.

 

3.1혁명의 꿈, 한반도 평화체제의 실현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작금의 북미 비핵화협상 및 남북대화 국면은 우리 민족에게 오랜만에 찾아온 정말로 소중한 역사의 기회이다. 비핵화를 이루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출현하여 100년을 기다려온 자주적 근대국가의 꿈이 어쩌면 실현될 수도 있는 시대전환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 변화의 추세에 맞추어 과거 100년 동안 외세와 내부의 분열주의자들에 의해 우리의 자주적 근대국가의 꿈이 어떻게 그리고 왜 좌절되어 왔던가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전 사회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스럽겠다. 정부를 중심으로 비상한 각오로 북한 당국 및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여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성사되길 소망한다. 북한이 비핵화를 보다 확실히 결단하고 이를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아 북한에 대한 각종 제재가 풀어져서, 북한 주민의 피폐해진 민생상황을 개선하고 나아가 한반도 경제공동체가 실현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바란다. 또한 아직 민족 구성원들 다수가 지니고 있는 북한에 대한 대결의 정체성을 공존과 연대의 정체성으로 전환시켜 나가고, 청소년들이 평화와 통일의 바른 관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평화교육, 통일교육, 시민교육이 충실하게 실시되길 기대한다.

조성두 공동대표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독일 통일을 이룬 콜 총리는 역사의 한 순간 곁을 스쳐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잡음으로써 통일을 이뤘다고 회고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 한반도에 그러한 기회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100년 전 3.1혁명의 과정에서 솟아난 자주적 근대국가를 향한 꿈, 한반도 평화체제의 꿈이 실현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지금 과거 우리 민족에게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유실했던 우를 반복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끝>

평택시민신문 webmaster@pt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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