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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호 마안산 자락에 터 잡은 행위예술가 김석환 작가

기사승인 2019.11.27  10: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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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위 예술가는 제사장이며 장엄한 의식의 집행자”

3·1운동 100주년 맞아 3월 히말라야 올라 독립 영혼 진혼굿 펼쳐 
킬링필드·사라예보·시베리아·세월호 등 찾아 전쟁과 재앙 희생자 넋 위무

[평택시민신문] 국내 행위예술가 2세대 김석환(62) 작가. 역마살이 낀 삶을 살아왔다고 소개한 그는 빈 작업장을 찾아 여주, 이천, 용인을 거쳐 1997년에 평택시 진위면 무봉산 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무봉산은 그가 꿈꾸어왔던 것처럼 자연과 하나가 되기에 최적의 장소였지만 남의 터였기에 떠나야했고, 2001년 평택호가 보이는 풍광 좋은 현덕면 신왕리에 ‘코스페이스아트’라는 문화공간을 열며 둥지를 틀었다. 지역 예술가들과는 무봉예술제, 혼불제, 마안산 예술제 등을 통해 함께 해오고 있다. 

마안산 자락에 위치한 여선재에 들어서면 그가 만든 작품들이 줄지어 반긴다. ‘여유로움이 남아 풍요를 얻고 고요함이 넘쳐 평온을 찾는 곳’이라는 뜻의 여선재는 찾아 온 모든 사람이 풍요롭고 평온해지길 바라는 김 작가의 마음이 깃든 공간이다.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에 희망을 접고 살던 그에게 미술은 미래를 꿈꾸게 했다. 가지 못하는 세상을 그림을 통해서는 얼마든지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는 소외된 것들에게 남다른 동정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2007년 그는 내전의 아픔을 안고 있는 보스니아 사라예보, 발칸 주변국들과 2012년 캄보디아 킬링필드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씨엠립 바탐방에서 아픔을 치유하는 혜원의 굿판을 벌였다. 이외에도 유태인 희생자들, 씨랜드, 세월호 등 지구촌 수많은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고 평화를 호소하는 퍼포먼스를 18년째 하고 있다.

2000년을 맞던 해 그는 과거 20세기에 전쟁과 재앙으로 죽은 영혼들을 진혼하고 반성하며 새천년을 맞이하자는 의미에서 연막이 장착된 관을 짊어진 채 도심과 서울 복판을 돌며 소독하고 관을 태워 밝은 미래의 삶을 호소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당시 새천년을 맞는 지구촌은 축제의 장이었지만 전쟁과 살인, 환경파괴 등 새천년을 맞이할 자격들이 있는가 반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정화작업을 강행한 것이다.

올해는 지난 3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 올라 한반도의 자주독립을 염원하며 독립 열사들을 위로하는 진혼 퍼포먼스를 하고 왔다.

김석환 작가는 온몸으로 시대적 이슈를 이끌어내는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은 세상을 대하는 창구이자 반려자라고 말하며 죽음에 이르러서도 자연 속 전위예술로 묻히고 싶다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2019년 3월 19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고락셉 5200미터 고지에 올라 독립운동 영혼을 위로하고 한민족의 자주독립을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김석환의 예술관은 어떠한가

나의 예술은 의식된 일상이다. 내가 추구하는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고 꿈과 이상을 함께 나누며 소통하는데 있다. 내 작업은 경계를 훌쩍 넘어설 때가 많다. 인위적으로 설정한 범주 따위는 관심 밖의 일이다.

제일 신경을 쓰는 문제라면, 내 자신의 작업에 어떤 주술성을 깃들게 하는 일이다. 저 세상의 생명에 대한 끝없는 갈구가 나의 작업을 물들이는 유력한 주제가 되고 있지 않은가 싶다.

그러한 주술성에 생명을 주시하기 위해 간접화법보다는 직접화법을 쓰기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적나라한 표현법을 기용하기도 한다. 고도의 추상성이나 관념에 머무는 예술이 아닌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며 몸으로 부딪히고 삶의 현장에서 호흡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예술로서 표현하려 한다. 대중과의 소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형식의 틀을 버리고 대중에게 다가가 함께 호흡하는 예술제를 삼십여 년째 만들어가고 있다.

캄보디아 킬링필드와 보스니아 사라예보를 찾아 전쟁으로 무고하게 희생당한 넋을 위로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김석환 작품의 특징은 무엇인가

퍼포먼스 작가는 ‘반(半)만신’이 돼야 한다. 반쯤은 무당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신이 실려야하고 혼이 실려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예술작품은 혼이 실려야 강한 에너지를 가지게 된다. 특히 행위에서 신의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면 만신처럼 영적 기운을 집중시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제사장이며 장엄한 의식의 집행자이고자 한다. 그 정도는 돼야 관객들도 영혼의 생명력을 체험할 것이 아닌가.

내 작품이 지닌 특징이라면 이 같은 주술성에 범주의 제한을 두지 않고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 또는 자연세계로까지 넓혀간다는 것이다. 어떤 무명의 사물이라고 해도 사물이 지닌 고유의 생명을 감지해낼 수 있도록 유도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 속에 깃든 영혼과 접촉할 때 발생하는 생명의 에너지를 민감하게 예술로 표현하려 한다.

자연과 인간을 작품의 테마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만들어내는 예술제의 중심 테마는 ‘자연과 인간’'이다.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는 자연이라는 커다란 밭에서 영감을 얻고 작업을 한다. 삶의 여로에 지쳤을 때 자연은 항상 그에게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고 깊은 휴식을 제공해 주었다. 그래서 나의 작업에는 항상 자연이 깃들여져 있고 그 자연의 포근한 이미지가 내재돼 있다. 자연을 노래하며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일상이 곧 나의 작품이자 삶이다.

1990년도에는 자연을 훼손하는 이기적인 문명인들에 대한 고발과 생명에 대한 본질을 찾는 작업이 주를 이루었다. 생명의 소중함을 무시하고 자연을 피폐화시키는 이기적이고 야만스러운 문명인을 치유하고자 했으며, 순수하고 자연스런 원초적 생명에 대한 회귀를 주장했었다.

새천년을 맞아 전쟁과 죽음의 20세기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서울의 중심가를 돌며 소독하고 관을 태우는 밀레니엄퍼포먼스를 펼쳤다.

계몽적인 작품들이 많은데, 이상적인 사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의 작업은 이 지구 전체의 생존과 인간적 삶에 대한 책임을 호소한다. 그리고 그 책임이란 지금처럼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면적인 변혁, 삶의 작업과 기조를 바꾸는 내적 혁명 차원에서의 변화를 뜻한다.

작업에서 항상 염두에 두는 자연회복은 우리가 잃어가는 세계를 새로이 ‘정립’하고자 함이다. 인간에게 무책임하고 안일한 사고방식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생을 인식하고 시대의 증인으로 서야 한다는 인식을 재확인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도시화의 문명에 대한 반감과 그 속에 안주하는 도시인들에 대한 반감 또한 작업을 이해할 수 있는 코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최근에 히말라야에서 선보인 퍼포먼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19년 3월 19일 3·1절 백주년을 맞아 한반도 자주독립의 염원을 하늘에 고하기 위해 신들의 나라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고락셉 롯지 5200m 고지에서 독립 열사들의 혼이 적혀있는 대형천을 들고, 한반도 자주독립의 새싹이 돋고 평화의 길을 열기 위해 춤을 췄다. 태극이 세계 속에서 자주의 바람, 평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진행한 퍼포먼스였다.

4년 전에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블라디보스톡에서 리스본까지 철의 실크로드 13개국을 열차로 돌며 남북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대장정의 제의적 퍼포먼스를 50일간에 걸쳐 펼쳤다. 남북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철의 실크로드 문화 교류 프로젝트 “동방으로부터-평화통일 대한민국”을 통해 분단된 조국의 통일의 길을 순수 문화 예술을 통해 찾으려 했다.

여정 동안 각 나라 지역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통일 문화 장터 축제에서 통일에 대한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어 보여 줌으로써 행사를 통해 국제 사회에 남북통일에 대한 염원의 메시지를 이슈화시키도록 유도하는 등 평화 사절단 역할을 톡톡히 했다.

평택호 현덕면 마안산 자락에 자리잡은 김석환 행위 예술가의 보금자리 코스페이스아트

평택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나는 평생 역마살 낀 삶을 살아왔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공연을 위해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개인의 영달과 부귀영화는 제쳐놓고 돈이 생기면 작품에 투자하고 가족보다 돈 안 되는 설치, 행위작업에 세월을 묻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문명의 틀 속에서 자연을 찾아 나서고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몸부림쳤었다. 경제적 빈곤은 수 십번의 이사를 종용했다. 그러다가 90년대 어느 날 바람같이 산 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50살이 가까워 오는 나이가 돼서야 겨우 정착을 하게 됐다.

평택호가 보이는 풍광 좋은 현덕면 마안산 자락에 터를 잡았다. 혼자 손으로 뚝딱거려 지은 작업실은 건물 자체가 설치작품이다.

작업실의 이름은 ‘코스페이스아트’(공간통합), 예술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동소유, 즉 사회의 것이라는 개념이다. 항시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공간,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예술의 메카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코스페이스아트에서 눈을 들면 여선재가 보인다. ‘여유로움이 남아 풍요를 얻고 고요함이 넘쳐 평온을 찾는 곳’이라는 뜻이다. 여선재는 예술을 사랑하고 사랑을 나눌 줄 아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끼리 모여 정담(鼎談)을 나누는 곳이다. 여선재에 오면 세상살이의 덧없음도 바람 앞에 재가 되어 날리는 듯하다. 이곳 여선재가 한 지역 사람들의 보궁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의 보궁으로 자리하고, 그 여유로움과 고요함이 널리 이어져 만인을 풍요롭고 평온하게 해주길 바란다.

박민아 기자 webmaster@pt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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