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민신문] 

 

구두박사 

                          배두순 시인

 

구두도 아프면 병원에 간다

아파트촌 모퉁이에 성업 중인 구두병원

진종일 허리 한번 펴지 못한 구두박사

둥근 지구를 아슬아슬하게 굴리고 다니느라

비스듬히 기울어진 뒤축들을 끌어올리고 있다

저 공간을 벗어나본 적이 없는 그는

희미한 족적을 본뜨고 필사하며

무아지경에 들 때가 가장 행복하다

문틈으로 들어온 햇살협객이

목덜미를 찌르는 줄도 모르고

방울방울 떨어지는 땀방울을 꿰어

깁고 봉합하며 빈사의 시간들을 되돌려놓는다

기꺼이 저를 축내며

사람을 섬기고 받들어 모시던 신발

찢기고 다친 것들을 골라 대수술을 할 때도 많다

약을 발라 문지르고 광을 내던 박사는

가난했던 제 청춘의 한 대목을 어루만지듯

잘 손질된 구두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어

마지막 정성을 덧입힌다

내일이면 저마다의 주인을 태우고

삶의 전쟁터로 출전할 구두들

어떤 무기보다 빛나는 투지(鬪志)가 일품이다

 

푸른 정구지*

단발머리 찰랑대는 정구지밭이었네

까까중머리로 삭발할 때는

눈물 같은 진액을 송골송골 밀어 올렸네

어머니는 상처를 달래듯

볏짚 재를 가만히 덮어 주었네

며칠이 지나면 다시 목을 내밀고

가지런히 하늘을 우러러보던 정구지

어머니는 거름을 주고 잡풀을 뽑아내며

때가 되면 쓱쓱 베어 저잣거리에 내놓았네

겨울이면 동네 아이들과 연을 날리고

자치기를 하며 뛰놀던 정구지밭

그렇게 짓밟혀도 봄이 기척을 하면

땅을 헤집고 쏙쏙 올라오던 뜨거운 생의 촉들

첫 정구지를 먹으면 더운피가 서 말이라고

맏사위도 주지 않는 거라고

자식들의 밥상에 나물로 부침으로

그득하게 차려지던 봄날의 진수성찬

그런 정구지를 먹고 자랐으나

나 아직 세상을 데우는

뜨거운 피가 되지 못했네

뜨거운 피가 되지 못했네

*부추

배두순 시인

평택문인협회 회장

국제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격월간『정신과 표현』으로 등단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국제문학교류위원

평택시민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강사 역임

문예학습지도사

 

수상경력

평택시문화예술표창장

경기도문학상

평택문학상

천강문학상

평택예총예술대상

 

저서

시집『숯 굽는 마을』

시집 『반달이 돌아왔다』로 2006년 경기문화재단 우수창작지원금 수혜,

2017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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