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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 앞둔 평택대 미국학과 김남균 교수

기사승인 2020.08.26  11: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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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가치와 이익’ 함께 나눌 수 있는 나라로 매우 중요

지난 3년간 본지에 ‘김남균 교수의 글로컬 프리즘’ 연재하며
균형 있는 한미관계와 장기적 안목의 국제관계 중요성 강조
“평택은 영어특화도시나 영어특별도시로 발전시키면 좋을 것”

[평택시민신문] 평택대학교에서 22년간 미국학을 가르쳐온 김남균(65) 교수. 그는 평택시민신문에 ‘김남균 교수의 글로컬 프리즘’을 3년간 연재하며 우리 사회에서 문제로 부각된 이슈와 비교할 수 있는 미국의 유사한 역사적 사례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추출해 전해줬다. 2017년 2월 15일 자 칼럼 ‘트럼프의 미국, 어디로 가는가?’에서는 “트럼프의 막무가내 공약 추진이 계속되고 그 마찰도 이어질 것…그 중 가장 염려되는 것은 경제논리를 근거로 한미동맹을 흔드는 무리한 요구이다”라고 썼다. 2020년 한미 방위금분담 협상을 지켜보면 새록새록 곱씹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년퇴임을 앞둔 김 교수를 만나 대한민국 그리고 평택에서 미국을 어떻게 바라봐야할 지를 들어보았다.

정년퇴임을 앞둔 심정이 궁금하다

가장 큰 변화는 65세가 돼 지하철도 무료로 탈 수 있게 된 거다. 법적으로 노인임을 인정받은 듯해 기분이 묘하다.

평생해온 일이 공부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공부다 보니 일상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퇴임을 하는 만큼 책 읽는 시간이 늘 수 있겠다. 요새 눈이 나빠져 원하는 만큼 책을 못 읽을 거 같아 걱정이다.

 

영문학과나 영어과가 아닌 미국학과라 하니 다소 생소하다. 미국학을 정의한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미국학과는 지역학으로서 미국이라는 나라를 기반으로 한 학문이다. 미국 사회의 정치·외교·문화 등 여러 분야를 사회과학과 인문과학과 연계해 융합적으로 연구하게 된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전문가를 키우는 것이 교육 목표라 볼 수 있다.

 

미국학을 공부하겠다는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는지

강원도 평창이 고향이다. 강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강원대 교육대학원을 다니던 1979년 자주 찾던 춘천 중고책방 ‘경춘서점’에서 영어공부를 위해 읽을 원서를 찾다가 작은 원서 한 권을 발견했다. 존 크라우트(John A, Krout)가 쓴 <United States since 1865>였다. 남북전쟁의 종식 이후 미국을 다룬 이 책을 읽는 순간 머리를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남북전쟁도 내전 아닌가. 연방정부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켰던 남부 지도자들에 대하여 링컨 대통령은 아무런 보복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인명 피해가 60만명이 발생했는데도 반란 주의 주민 10퍼센트만 찬성한다면 반란주를 다시 연방에 조건 없이 복귀시켜 주겠다는 링컨의 제안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1970년 우리 사회는 반공이 모든 가치에 우선했고 6.25 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사회의 주력이었다. 휴전 후 20년이 넘었지만 전쟁의 기억을 잊기에 충분치 않았다. 2020년을 사는 우리도 2002년 월드컵을 생생하게 기억하지 않는가.

이러한 현실에서 남북전쟁이란 내전을 치렀음에도 주모자들에게조차 법적인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미국사회를 알고 싶었다.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이 바뀔 수 있다니 놀랍다

그때도 하고 싶은 건 공부였지만 뭘 공부해야 할지 막막했다. 20대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울분으로 가득차 있었다. 강원대학교 법학과를 1978년 졸업했는데 갈 데가 없었다. 소아마비라는 장애 때문에 기업에 입사할 수도 없었고 공무원·교사도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짧게나마 시간을 벌기 위해 교육대학원에 입학했고, 재수생 종합학원 강사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이처럼 어디서도 나를 받아주지 않는 암울하고 막막한 상황에서 뭘 공부해야 할지 알려줬으니 정말 소중한 책이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책을 간직하고 있다.

 

1980년대에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석사학위 논문으로 ‘남북전쟁 후 남부재건정책’을 썼다. 더 깊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싶은데 국내에 미국학 자료가 충분치 않아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유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통장 잔고가 부족해 미국 비자를 발급받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30세에 아내와 8개월 된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아내와 함께 일하며 생활비와 학비를 벌었다. 1980년 당시 평균 월급이 10만원 정도였는데 미국에 가 보니 백만원을 벌 수 있더라. 석사학위를 받은 털사대학교는 사립대학이라 등록금이 매우 비쌌다. 조교를 하며 등록금을 면제받고 생활비도 지원받았다.

 

미국에서 계속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유학길에 오를 때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었다. 미국학을 제대로 공부해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미국에 남으려면 경영 같은 실용적인 학문을 했지 미국 역사와 외교를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오스 텍사스대학에서 미국사로 박사학위를 받을 당시 미국사를 전공한 한국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미국 유학생활 10년 끝에 40살에 귀국했더니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너무 달라져 처음에는 적응이 어려웠다.

 

평택대와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되었나

귀국해 보니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Globalization)를 추진하며 국제전문 인력 육성에 힘을 쏟고 있었다. 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서울에 있는 9개 대학에 국제대학원 설립 허가를 내줬다. 그 과정에서 지역학이 도입됐고 전국에 있는 대학 학부에 관련학과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평택대에도 1996년 미국학과가 개설됐다. 첫 입학생들이 1~2학년 때는 교양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운영했지만 3학년이 될 때에는 미국역사를 공부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를 필요로 했다. 이에 제 조건이 딱 맞았고 1998년 평택대 미국학 교수 1호로 임용됐다.

 

교사가 되지 못해 방황하던 20대를 떠올리면 감회가 남다를 거 같아 보인다

삶이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나라에서 평범하게 살 수 없어 방법을 찾다가 미국 유학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유학 전에는 기대하지 못했던 교수가 됐다. 미국학이라는 전공을 살릴 수 있었고 기독교인이어서 평택대가 기독교 재단이라는 점도 좋았다.

 

평택대 교수가 돼 평택에 처음 오게 된 것인지

당시엔 평택대를 떠올리면 건물이 서너 개에 불과했고 주변이 다 논밭이었다. 점심 먹고 논둑길로 산책을 다녔다. 22년간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가르치고 공부하며 지내다 보니 평택도 평택대도 놀라울 만큼 발전했다.

 

평택시민신문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20년 가까이 집과 대학만 오갔다. 그러다 2016년 선배교수의 소개로 평택시민신문을 알게 됐다. 늘 평택에 기여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오던 차에 칼럼을 제안받아 좋은 인연을 맺게 됐다. ‘김남균 교수의 글로컬 프리즘’은 정기적으로 쓴 첫 칼럼이다.

글을 쓰며 미국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미군이 주둔하는 평택에 사는 시민들이 미국을 더 잘 알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려 노력했다. 이왕 쓴 글이니 모아서 작은 책자로 만들고 싶은 욕심에 최근에 <한미 정책문화 산책>(도서출판 선인)도 냈다.

<한미 정치문화 산책>(도서출판 선인). 2016년 11월부터 2020년 8월까지 본지에 연재한 김남균 교수의 칼럼을 모았다.

미국을 잘 알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도 러시아도 일본도 우리나라를 무던히도 괴롭히고 힘들게 했다. 그 속에서 우리나라 조상들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렇다면 미국 역시 우리를 괴롭힐 나라인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소련과 함께 3.8선을 그었고 미군정을 실시했다. 하지만 1949년 500명의 군사고문단을 제외한 미군을 철수시켰다가 6.25전쟁이 일어나자 미군은 유엔군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다시 돌아왔다.

이후 우리나라와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안보라는 큰 틀에서 협력해왔다.

즉 미국과의 관계는 우리 생존과 직결돼 있는 셈이다. 그래서 미국과 좋은 관계를 어떻게 맺고 어떻게 관리할지를 신중히 살폈으면 한다. 개인 관계도 영원한 친구는 없다.

그리고 친구가 여럿 있다고 똑같이 친할 수 없다. 정서와 가치관이 맞고 말이 통한다면 더 친해질 수 있다. 편견이나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말고 우리 국익에 따라 균형있는 관점에서 주변 강대국을 대해야 한다.

 

한미 관계에서 안보가 크게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

국가 안보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가치가 아니라 이익의 문제다.

가치는 삶에서 개개인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 지 이고 국가도 마찬가지다. 주변 강대국 중에서 우리가 중시하는 가치와 가장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가 어디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익의 차원에서는 싫은 사람이랑도 친해야 한다. 가치의 차원에서 보면 잘 맞는 사람이랑 사귀어야 한다. 이익과 가치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킨다면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다.

최근 홍콩과 중국의 갈등에서 우리나라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 이익 측면에서는 중국 편을 들어야 하고 가치적인 면에서는 홍콩에 공감이 갈 수 있다. 외교란 그래서 어렵다. 속을 드러내고 할 수 없다.

미국과의 관계는 비교적 우리의 가치에 맞고 이익이 되기에 중요하다. 이익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있을 수 없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되 사안별로 국익에 부합한지를 따져서 정교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평택에 대한 바람이 있다고 들었다

평택은 미군이 주둔하고 교류가 이뤄지다 보니 국제화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해서는 다문화나 외국인 등 타자에 대한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열린 마음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상대를 이해하려면 배경지식이 있어야 한다. 미국 등 외국문화에 관심을 둔 상태에서 잘 배우고 익혀야 한다. 평택시는 미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시민교육·다문화교육을 꾸준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카터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우리 자신에게 진실하기 위해서는 남에 대해서 진실해야 한다”고 했다. 상대를 이해하고 우리를 이해시키는 과정이 국제화·세계화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영어특화도시나 영어특별도시로 평택을 가꾸는 것도 좋겠다. 미국을 잘 알고 영어를 잘 아는 학생들을 육성한다면, 평택의 상점에서 점원들이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면… 이게 미군에게 좋은 것인가? 아니다. 평택과 우리나라에 좋은 것이다.

평택의 특수한 환경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킬 방안을 평택시와 시민이 함께 모색했으면 한다.  

김윤영 기자 webmaster@pt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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