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민신문] 지난 2018년 7월 평택시 팽성읍 캠프 험프리스(K-6)에 주한미군사령부가 이전함에 따라 주한미군 이전이 완료됐으며, 본격적인 주한미군 평택시대가 시작됐다. 이에 앞서 <평택시민신문>은 지난해 세계 최대 규모의 주한미군기지 건설에 따른 지역사 차원의 주둔역사를 정립하고, 미군과의 바람직한 다문화 공동체를 형성하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미군 평택주둔 약사 및 생활문화에 끼친 영향>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책에는 평택의 각계 전문가들과 대학교수들이 참여해 평택지역의 외국군 주둔 역사와 미군주둔이 평택인의 생활과 삶에 미친 영향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더불어 주한미군 평택시대에 대처해야 할 지역사회의 과제 등 평택시민에게 주어진 미래의 과제를 살펴보는 내용도 담겼다. 주한미군 평택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 시점에 지역사 차원의 미군 주둔 역사를 이해하고, 한미양국의 이질감을 줄이고 새로운 공동체 문화 조성에 기여하기 위해 <평택시민신문>은 해당 도서의 내용을 지면으로 소개한다.

이번 글은 우대식 시인의 '박석수론'을 싣는다.

“그의 고향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미국 사람을 같은 고향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비극적인 것은 미군은 한 번도 우리와 같은 고향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

당대를 대표하던 문학가 박석수

박석수의 소설은 송탄의 기지촌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것이 반미적 성향을 띠었다는 것은 한미관계를 새로운 위치에서 정립하고자 입장, 좀 더 세밀하게 말하자면 보편적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즈음 출판사 한겨례에서 의미 있는 한 권의 책이 출판되었던 바 『반미소설선』이 그것이다. 반공이 국시였으며 반미는 곧 반공에 반하는 것으로 규정하던 시대에 문학적 자각은 과연 그러한가를 집요하게 되물었던 것이다. 채만식의 「논 이야기」를 위시하여 최정희의 「풍류잡히는 마을」, 남정현의 「분지」, 이문구의 「해벽」, 신상웅의 「내가 그린 내 얼굴 하나」 등의 작품과 더불어 박석수의 「철조망 속 휘파람」이 실려 있는 이 작품집은 가히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 소설집은 사회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켜 한 신문에서는 미국의 실상과 허상을 더듬었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당시 박석수는 한국문학의 중견작가라 해도 빠지지 않을 정도의 작품적 성과를 내고 있었으며 그의 작품에 많은 관심이 표명되었다. 『차표 한 장』이 출간되었을 때 관념의 과적성이 극복되어 구체적으로 분단의 아픔이 묘사되었다는 기사를 비롯해 『동아일보』(1990.03.19.)와 『한겨례』(1990.03.22.)에서 앞 다투어 신간을 소개했던 것이다. 1990년 『성서와 함께』라는 종교월간지에 아우구스트티누스라는 세례명으로 시를 두 편 발표한다. 종교로의 침윤은 그가 죽음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인일보』 구독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368회나 연재되던 소설 『로보의 달』이 행림출판사에서 상·하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한 신문사에서는 「인기작가들 콩트집 출간 활발」이라는 제호로 시인 김남조의 『아름다운 사람들』과 소설가 김채원의 『장미빛 인생』 그리고 박석수의 『분위기 있는 여자』를 소개하고 독특한 문체로 문학성 높은 콩트의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의 심사위원이 되어 후진을 뽑기도 한다. 당시 단편소설 본심은 송영, 조세희가 예심은 최인호와 박석수가 담당하였다. 신춘문예 심사위원이 가지는 상징성은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이라는 사실이다. 함께 예심을 보았던 최인호의 명성이야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 박석수의 죽음이 안타까운 것은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한국문학사에 분명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미국화된 고향에 대한 슬픈 고찰

1993년 7월 와병 속에서도 그는 소설집 『쑥고개』를 상자한다. 박석수의 시 가운데 유독 많이 등장하는 시어가 바로 ‘고향’이다. 고향 쑥고개는 이제 더 이상 쑥고개가 아니었다.

“지금은 ‘쑥고개’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송탄’이라고들 그러지요. 송탄 JC 회원들이 주축이 돼서 ‘내고장 이름 바꾸어 부르기 운동’을 해서 고쳐 놓은 것입니다. 버스 앞 에도 ‘쑥고개’라고 표기하면 승차를 거부하자고 플렌카드를 들고 데모를 하니까 버스들도 금방 ‘송탄’으로 바꾸더군요.”  - 「동거인」에서

이러한 소설의 내용은 사실 당시의 송탄의 역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1981년 송탄읍에서 송탄시로 승격되면서 송탄시의 주민들은 잔재처럼 남은 쑥고개라는 이름을 지워버리고 싶어 했다.

전국에서 애향심이 가장 높다는 松炭(송탄)읍 청년회의소 회원들은 숯고개가 「쑥고개」로 불리는 내 고장 이름을 「松炭(송탄)」으로 바로잡는데 공헌했다. 「쑥고개」라고 행선지를 쓴 버스 안타기 운동을 벌였고 이를 전국청년회의소 회원들에게도 호소, 松炭(송탄)으로 바꿔놓았다.

소설의 내용은 이 신문 기사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박석수는 같은 소설에서 “나는 사내가 데모까지 해서 바꾸었다는 송탄이 쑥고개와 어떻게 다른지를 알지 못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생각과 작가의 생각은 출발점이 다르다.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박석수는 생각했던 것이다.

소설집 『쑥고개』에도 「고향」이라는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이 소설에서 잡지 편집을 보는 ‘나’는 쑥고개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한 사람은 작가를 지망하는 쑥고개 출신의 세련된 여성이다. 오직 성적인 묘사에 치중한 한 편의 소설을 보아달라는 그녀의 요청에 그는 읽어는 보았지만 대충 평가를 유보한 채 넘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추석 때 고향에 내려가 우연히 그녀를 만나 차를 한잔 마시게 된다. 차를 마시며 나눈 그녀와의 대화에서 그는 무섭고 소름끼치는 일이 고향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아래와 같다.

“경주나 대구, 또는 부산이나 마산 같은 데를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들을 많이 만나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어디서나 늘 만나는 사람들이니까 하나도 반가운 줄 모르겠는데, 미국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그래 다가가서, 물어보지요. ‘너 어디서 왔느냐’구요. 그러면 그들 중의 7~80퍼센트가 모두 ‘쑥고개’에서 왔다는 거예요. 얼마나 반가운지. 정말, 고향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요. 아니 실제 고향 사람이기두 하구요.”

이제 그의 고향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미국 사람을 같은 고향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개보초가 무엇인지 양색시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미군을 통해 들어오는 미제 물건을 몸에 걸치고 되먹지 못한 발음으로 그들과 몇 마디를 주고받으면서 미군들과 동질성을 확인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극적인 것은 미군은 한 번도 우리와 같은 고향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의 소설에서 보이는 고향에 대한 날카로운 현실 비판이 시로 오면 좀 더 따뜻하고 인간주의적인 것으로 흐르고 있다.

고향에 가면
보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모두 미국화 된
고향에 가면,
이제는 하북 냇가까지
그들의 정액이 흐르고 있네.

석수
너 몸 많이 약해졌다는
소문 들리던데
오늘 이왕 내려온 김에
내일은 아예 개 한 마리 잡아서
우리 모두
하북 냇가로 놀러 가자는
전과 4범 인분차 운전수
유재규 동무 말 들으면서
까닭모를 눈물 흘리네.

                                   「하북 냇가－쑥고개·40」 전문

‘보고’ ‘듣고’ ‘먹고’ 즉 모든 것이 미국화 된 고향이라는 인식은 소설 「고향」에서 보여주는 것과 별 다르지 않지만 배운 것 없고 가난하게 사는 ‘유재규 동무’의 말이야 말로 그가 끝내 고향을 잊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또한 고향의 수난사를 예리하게 드러내며 아픔을 표출한 까닭도 여기에 있을 터이다. 저 따뜻한 마음이야말로 개별적인 인간들이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