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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수기념사업회장 우대식 시인

기사승인 2020.04.01  1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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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은 고향 원주가 만들어준 내면이 문학적으로 구현된 공간”

박석수의 정체성과 시정신은 
그저 일개 시인의 
정체성과 정신이 아니라 
평택의 정체성과 정신

[평택시민신문] 우대식 시인은 평택의 대표적 시인 중 한명으로 30여 년 가까이 진위고등학교의 교사로 재직해 왔으며 현재에는 숭실대 문예창창학과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송탄의 박석수라는 문인을 발굴해냈을 뿐만 아니라 작년부터 박석수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어린시절, 혹은 학창시절의 ‘무엇’이 시인이 되게했는지.

제 고향은 강원도 원주입니다. 평택에서는 28살 때부터 살기 시작했어요. 어린 시절 원주가 내면을 만들어준 곳이라면 평택은 그 내면이 문학적으로 구현된 공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겁니다. 시집 출간을 비롯해서 모든 문학적 활동이 평택에서 이뤄졌어요. 어쨌거나 제가 시인으로 살아가게 된 것에는 결핍과 부재가 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굳이 어린시절이나 학창시절에 국한해 구체화시켜야 된다면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것과 연관이 있겠지요. 제 경우엔 ‘엄마의 죽음’은 단순히 엄마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사고와 정신, 존재의 누락이었어요. 돌이켜보면 그것을 메우려는 어떤 부단한 본능같은 것이 작용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문학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학창시절 삼중당 문고에서 출간한 책들을 구입해 탐닉하듯 읽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더러 집에 쌓인 책들을 정리하곤 하는데 그 책들은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시절의 위안이 담겨있어요.

 

평택의 문인 박석수를 발굴하고 박석수기념사업회장을 맡게된 계기는.

꽤 오래 전에 <현대시학>의 요청으로 요절한 시인들을 연재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송탄의 박석수 시인을 발견했습니다. 빛나는 시들이 참 많았어요. 소설도 좋았구요. 기지촌 문제를 비롯해 평택지역을 날카로운 문제의식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작가가 중앙문단에서는 물론 평택 자체에서도 잊혀진 상태였습니다. 왜 이렇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왜 잊혀졌을까 하고 의아하고 안타까워하던 차에 시인인 중앙대학교 이승하 교수를 만났고, 이런 분은 일단 시집이라도 복간 시키는 것이 좋겠다해서 시집을 출간했지요. 이후에 작은 시비라도 하나 세워드리고 싶었습니다. 박석수시인과 평택의 관계를 생각할 때 여러 모로 의미가 있겠다 생각했지요. 참 간단한 일이라 여겼는데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전농회장이셨던 한도숙 선생께서 여러 사람과 함께 해결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송사모(송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와도 함께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박석수기념사업회까지 이어졌습니다. 직책은 맡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천성이 나서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시를 쓰고 공부하는 것도 시간이 모자랐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회장을 맡고 계시던 이성재 선생께서 위암으로 타계하시고, 공석으로 둘 수 없으니 일단 제가 맡게 된 것입니다. 일종의 임시직이지요.

 

박석수기념사업회에서 추진하고 싶은 일들.

먼 미래까지는 알 수 없고 당장은 네 가지 정도를 추진하고 싶어요. 하나는 애초에 소망했던 시비를 건립했으면 합니다. 송탄미군기지 근처에 시유지가 있다면 그곳에 세우는 것도 좋겠고, 어렵다면 지산초록도서관에 하나 세우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박석수 시인의 묘를 청북읍 공원묘지 쪽으로 이장해왔으면 해요. 지금 박석수 시인은 용인의 천주교 묘지에 모셔져 있습니다. 작년에 벌초도 다녀오고 했는데 기한이 다 돼 무연고자로 처리될 상황입니다. 아드님이 한분 계시긴한데 홀로 사시는데다가 경제적 여건도 좋지 않아 이장을 홀로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시집을 복간했기 때문에 소설을 복간했으면 해요. 작가들이 작품에 쏟는 애정과 열정을 생각할 때, 이것은 시비를 세우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라고 봅니다. 네 번째는 학술세미나를 개최했으면 합니다. 전에 문화원에서 파트별로 나눠 진행한 좋은 전례가 있는데, 시와 소설을 중심에 두고 조금 더 전문적이고 지속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들을 살펴볼 때 박석수의 정체성과 시 정신은 그저 일개 시인의 정체성과 정신이 아니라 평택의 정체성과 정신이기도 합니다. 잘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올해 예술재단이 출범하게 되면 그 쪽과 잘 소통하고 정식으로 사업계획서를 제출해서 사업을 추진할 의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9년 등단하시고 벌써 시력이 20년이 넘으셨는데 시 세계에 변화는 있으신지.

제가 문학청년 시절에 박용래 시인을 좋아했습니다. 시가 쓰여지지 않을 때 그 공허함과 무상함을 박용래 시인의 시집을 읽어서 달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초기 시에는 박용래 시인의 색깔이 묻어 있어요. 특유의 서정성이라던가 언어와 이미지를 절제한다던가 하는 부분들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간과 신의 관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신은 종교적인 개념의 신을 포함해 어떤 절대적 타자나 공간, 무한한 시간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구체적 정서가 관념적 서술로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제가 본래 관념이든 이미지든 형상화되지 않으면 시가 완성한 된 후에도 폐기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는 너무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고, 또 초기작과 큰 차이가 없이 읽힐 수도 있지만, 제 자신은 이 변화를 느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신다면.

평택시와 평택군, 송탄시가 합쳐져 평택시가 됐습니다. 또 미군기지에 삼성전자, LG전자 이전을 계기로 도시 개발도 급물살을 타고 있구요. 그만큼 평택은 거대해졌습니다. 하지만 문화나 예술적인 측면이 그리 나아진 것 같지 않습니다. 시가 커지면서 거대공연들은 참 많아졌는데, 예술가도 보이지 않고 예술도 보이지 않아요. 특히 평택에서 문학의 자리는 거의 없어 보입니다. 도시가 황량하고 삭막해요. 예전에 송탄 청년위원회 소속의 젊은이들이 숯고개를 송탄으로 바꿔야 한다는 운동을 펼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박석수 시인이 “지역의 본질적 모순이 바뀌지 않았는데 외형만 바꾼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문제제기를 하신 적이 있는데 평택의 외형과 본질의 모순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그가 시정신으로 개념화한 ‘철조망 속의 파라다이스’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평택의 진짜 모습은 아닌지 한번 되새겨볼만 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이재웅 기자 webmaster@pt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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